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문단 편집) === 개신교의 평판 저하 가속화 === '''단 선교단을 주도한 인터콥은 현재 이단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명심할 것.''' 개신교단과 해당 교회측은 사안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하였으며, 이 사건 이후로도 국민들을 향한 사과나 향후 대책 없이 지속적으로 다른 대형 사건들을 일으켜 반감을 더욱 심하게 키우고만 있다. 단순히 선교로 벌어진 해프닝이 아닌 [[불법|'''국가에서 법으로 금지하는 일''']]을 저질러 국가에 수백억원대의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 (금전적인 의미에서는)테러 사건에 가까운 엄청난 일이었다.[* 2008년 벌어진 [[숭례문 방화 사건]]의 피해액이 200억대로 추산된다. 샘물교회는 국가 최중요 문화재를 파괴하는 것 이상의 피해를 대한민국에 입힌 것이다.] 선교에는 악영향만 미쳤으며, 건전한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개신교의 평판은 2000년 [[서울 지하철 4호선]] [[이수역]] 역명과 관련한 [[총신대학교]]의 억지 주장과 이에 항복한 서울시 지명위원회로 인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었다.[* 자세한 사연은 [[이수역/역명 논란]] 문서 참조.][* 아직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인 1990년대에 발생했던 [[다미선교회]] 휴거 소동과 [[만민중앙교회 MBC 습격 사건]]과는 달리 이수역 역명과 관련한 총신대의 억지 주장은 개신교 정통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산하의 신학대학교에서 일으킨 논란이었던데다 인터넷이 각 가정으로까지 널리 확산된 시기에 발생한 파문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파장이 매우 컸다.] 2007년 당시 개신교는 대내외적인 불신과 이미지 추락 가운데, [[한국의 개신교]] 초기의 부흥운동을 본받은 의욕적인 부흥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을 벌인 지 100주년이라며 기념했다.]을 펼쳤지만 '''이 사태가 찬물을 제대로 끼얹어 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개신교 내부에서도 '일방주의적인 선교를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늘 그렇듯 개혁적 목소리는 비주류인 탓에 묵살당했다. 사실 이들을 보낸 특정 교회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한국 선교사들 상당수가 해외 극빈 지역으로 가서는 현지 사정이나 반감을 눈곱만큼도 배려 않고 막무가내로 개신교 선교를 시도하여 도리어 개신교에 반감을 키운 경우가 많았다. 2007년 피랍사건 당시에도 샘물교회 봉사단이 들어오기 몇 년 전부터 이미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가니스탄 평화 축제 사건]]을 비롯한 온갖 실책 때문에 '''한국이라면 치를 떠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이슬람교]] 중에서 극단적인 분파는 비신자를 멸시하고 '''배교자라면 죽여도 된다고 본다.''' 이 때문에 배교자는 사람으로 안 여기고 망명 뒤에도 온갖 테러를 가할 정도다. 국가적으로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물론 이렇게 개종자를 잔혹하게 대하는 행태는 (개신교를 비판하는 것과는 별도로) [[이슬람 근본주의]] 문서에 나와있듯이 [[무슬림]]들을 [[이슬람공포증|경멸의 대상으로 분류하게 하는 데]] 아주 큰 몫을 한다. 상황이 이런데 이슬람을 대상으로 한 선교를 쉽게 보면 아주 큰일나는 것이다. 비개신교인인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도 별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개신교]]인데, 배교=피살인 이슬람교도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겠다는 것이 웃기는 소리다. 이 자들은 [[쿠란]]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테러를 일삼는 [[ISIL]]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